[퍼시픽 림] 어째서 이 영화는 흥행해야 하는가. 리뷰

[퍼시픽 림] 어째서 이 영화는 흥행해서는 안되는가

개인적으로 윗글을 쓴 블로그 주인장의 취향을 비난할 의도는 없습니다. 워낙에 퍼시픽 림은 취향이 갈리는 영화니까요.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은 간단히 반박해보겠습니다.

-간단하게나마 어떤 문화적 구조의 '부흥'이라는 게 어떻게 일어나고 스러지는지에 생각을 해보면 지금의 헐리웃 영화들은 스러짐의 과정에 있다고 조심스럽게 판단 할 수 있겠다.

일단 대전제인 헐리우드영화의 스러짐의 과정의 명징한 상징으로 퍼시픽 림을 보는 견해에는 찬성할수가 없습니다 . 만약 이 명제가 맞는다면 헐리우드는 이미 예전에 망해야했겠죠. 한 벤허 나왔을때쯤?.

-아름답고 활발한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창조를 경쟁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좌절하는 시기가 지나면 '필요에 따른' 창작이 차지하는 비중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어떠한 경우에서든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작가적 비전을 뽐내든 아님 그저 떼돈을 벌기 위해서든.

그런 의미에서 퍼시픽 림의 위치는 참 재미있는 게 골수오덕인 감독이 자신의 오랜 애정의 대상에 대애 한없는 오마쥬를 바치는 그야말로 순수한 영화라는 거죠. 그 대상이 다소 유치하고 B급이며, 일견 그 외관이 헐리우드의 막대한 자본을 들인 블록버스터란 외피를 뒤집어 쓴거라는것이 다르다면 다를 뿐.

예술가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작은 영화는 창작의 영역이고, 블록버스터는 필요에 의한 필요인가? 그건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류의 영화는 퀄리티는 어찌됐든 항상 일정 이상의 수요를 수반합니다. 흔히 저같은 덕후들에게는 귀한 단백질원...아니 선물이죠.

-그런 의미에서 요 몇년간 헐리우드에서 개봉하는 블록버스터들은 기존 시리즈에서 CG로 떡칠된 리부트이거나 영화제에서 시상받았던 아트하우스 영화들의 어설픈 리메이크, 혹은 만화나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같잖은 액션감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다.

퍼시픽 림의 오리지날리티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인데 오마쥬의 대상으로 태어난 영화긴해도 퍼시픽 림은 오리지날 각본으로 쓰여진 오리지날 작품입니다. 위에 세가지 예시 어디에도 퍼시픽 림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퍼시픽 림]의 태생 역시 쉽게 피해 갈 수 없는 비판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나도 많은 복제품들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종종 오마쥬는 오리지날리티 부재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예전에 에바붐이 불었을때도 많은 식자들이 에바의 전방위적 차용을 비판하면서 오리지날리티의 부재라는 용어를 끌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자신의 영화마다 과거 장르의 명작에 대한 클리쉐와 오마쥬를 한껏 때려박고는 그걸 당당히 밝히기까지하는 영화광 쿠엔틴 타란티노의 전작들은 어떤가요?

-알만한 사람들은 알 수 있는 일본괴수물과 슈퍼로봇물에 대한 양덕(..)의 취향이라는 건 둘째치더라도 극단적으로 비주얼을 따르고, 비주얼 자체가 서사가 되려는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건 현재 헐리웃 영화들이 노리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어떤 매커니즘으로 만들어지는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예상외로 퍼시픽 림은 서사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카이쥬가 어떻게 지구를 침공하게 되었으면 주인공들은 각자 어떠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심기일전하여 카이쥬와 맞서 싸워 지구를 구해내는가. 두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속에 설명이 충분치 못하여 비록 구멍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영화는 한순간도 이 서사를 배신하지않습니다.

다만 문제라고 한다면 퍼시픽 림의 서사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거죠. 6살짜리 아이가 자막을 안읽고봐도 내용을 다 알만큼 단순명료하죠. 위의 글쓴이는 복잡한 서사와 간단한 서사를 단순 비교하면서 간단한 서사는 서사의 부재와 뭐가 틀리냐고 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것처럼 보입니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 그리고 그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알고 그저 2시간의 시각적인 유흥을 위해서 영화관을 찾아오는게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시대에 아주 불균형적인 [퍼시픽 림]은 결코 흥행해서는 안된다.

어디서 본 장면이라도 이것이 헐리우드 최첨단 특수효과와 CG를 만나면 멋진 볼거리가 됩니다. 그것을 시각적 유흥이라고 비난할 순 없죠. 아무도 1980년대 트랜스포머 G1애니메이션을 큰 스크린으로 2013년에 보고 싶어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도 60년대풍의 쫄쫄이를 입은 배뿔룩나온 배트맨이 주인공인 다크 나이트를 보고 싶어하지 않을 겁니다.

시각적 유흥이 기정사실이면 불균형해서 안된다? 그건 퍼시픽 림 잘못이 아니라 이런 영화만 극장에 걸 기회를 주는 멀티플렉스를 소유한 대기업의 불균형한 상술의 잘못이 더큽니다.

-사람들은 더 화려하고 멋진 비주얼을 원하고, 또 그것에 따르는 것이 시장적인 순리에 맞다. 하지만 그만큼 예술의 대상이 소수에서 대중으로 옮겨 간 이후 공급자들도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퍼시픽 림]이 나쁜게 아니라 이런 영화들이 엄청난 공을 들여 만들어지고, 나머지 영화들의 목숨을 걸고 극장에 걸려진다는 것과, 이 영화가 끝나게 되더라도 또 다른 비슷한 영화들이 줄을 서서 영화관에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생태적으로 결코 좋은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행이 글쓴이도 자신의 글의 모순을 알고 계시네요.

-어쨌든 하나의 예술적인 시대가 저물어 갈때는 비슷한 것들이 재생산된다. 동시대를 살면서 쉽게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수많은 영화의 스승들이 말했듯 곧 영화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엄청난 돈을 들인 영상을 앞으로 볼 수 있을까?

앞서 말했지만 영화라는 예술은 그렇게 쉽게 죽진 않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예술성과 흥행성을 함께 아무튼 대부나 다크 나이트같은 영화도 적지만 꾸준히 나오니까요. 영화는 예술과 볼거리 둘 다를 가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할겁니다. 높아지는 관객의 수준과 기대에 맞춰서 열심히 들이대려고 말이죠. 다행히 이런 시도는 영화라는 장르 자체를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영속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재밌는건 퍼시픽 림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애시당초 예술영화적인 센스가 뛰어난 감독입니다. 그의 헐리우드 진출 이전작들을 보세요. 크로노스나 판의 미로같은 작품들 말이지요. 심지어 헐리우드에서 찍은 헬보이 시리즈만 해도 독특하고 환상적인 세계관이 일품이지요. 이런 감독이 예술의 시대를 끝내려고 퍼시픽 림을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배트맨 비긴즈가 1편에서 이것저것 판을 깔아놓느라고 다소 어수선했지만 그 속편 다크나이트는 잘 준비된 전편의 설정들 덕분에 훌륭한 영화로 거듭날 수 있었죠. 마찬가지 원리로 퍼시픽 림은 그 자체로는 다소 모자랐을지라도 그 후속편을 기대하게 됩니다.

어째서 이 영화는 흥행해야하는가라고 물으신다면 전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덕질에 이유가 어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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